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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인 세상

[정연주칼럼] 기자인가, 검사인가



  요즘 언론의 보도와 기자의 행태를 보면 이게 정말 언론인가, 기자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세종시, 4대강 개발 등에 대한 홍보성 보도는 조중동뿐 아니라 경제지, 방송 등 거의 한목소리다. 광고 전단지 같다.

  이 정도는 약과다. 최근 법원 판결에 대한 조중동의 매카시즘적 마녀사냥을 보면, 단순한 광고 전단지의 차원이 아니라 중세 암흑시대 마녀사냥을 보는 것 같은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이건 언론이 아니다.

  무릇 언론은 두 가지 기본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사실 보도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조중동을 비롯한 대부분 언론은 기득권 강자의 논리로 뭉쳐 있다. 가진 자의 편이다. 아니, 그들 스스로가 이미 기득권이고, 강자이고, 가진 자가 되어버렸다.

  특히 검찰 권력과는 거의 일심동체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검찰이 먹이로 던져주는 ‘피의사실’을 ‘기정사실화’해 버린다. 검찰이 던져주는 ‘피의사실’이라는 먹이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는다. 검찰의 논리와 검찰이 짜놓은 틀에서 사건을 본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피의자의 기본 권리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법조 취재의 본거지도 검찰청에 있고, 법조 기사의 주된 공급원도 검찰이다. 그렇게 함께 뒹굴다 보니 너무나 닮아가서, 기자인지 검사인지, 구분이 안 된다. 행태도, 논리도 너무 닮았다.

  나는 그 일심동체적 공생관계를 직접 경험해 보았다. 2008년 8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기소되기 전부터 언론은 검찰이 흘리는 먹이를 가지고 나를 중죄인으로 낙인찍었으며, 인격살해를 했다. 검찰의 주장, 검찰이 만들어 놓은 사건의 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KBS 정연주씨, 사장 더 하려 국민에게 1500억 손해 끼쳤나” <조선일보> 2008년 7월19일 사설 제목이다. 검찰 기소 한달 전에 그렇게 단정했다. 기소 전, 조중동에는 그런 기사, 사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자, 기사도 사라지고, 재판정에서 기자 얼굴도 사라졌다. 그들에게 재판 과정은 의미가 없는 듯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주장과 논리가 어떻게 뒤집히고 어떤 반대 증언이 나오는지 관심이 없었다. 하긴 검찰의 먹이를 가지고 이미 중죄인으로 단정한 그들에게 ‘유죄 판결’이라는 확인사살 외에 다른 관심이 있었을까. 그렇게 1년 가까운 세월을 법정에 오가며 보냈고,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조중동에게 ‘1심 무죄’는 별 의미가 없었으며, 그래서인지 조그맣게 보도되었다.

  판결이 나올 때쯤이면 정치검찰의 먹이가 된 피의자들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나처럼 해임되었거나, 인격살해를 당하게 되고, 정치인 같은 경우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은 뒤다. 무엇보다 주변의 시선은 검찰 논리를 확대재생산한 언론 덕분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식으로 차갑다. 정치검찰은, 표적으로 삼은 먹이를 만신창이로 만든다는 애초의 정치적 목적을 이미 달성했기에 재판 결과와는 상관없이 승승장구한다.

  최근 ‘피디수첩’ 판결에 대한 조중동의 매카시즘적 마녀사냥을 보고 있노라면 검·언 복합체의 실체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재판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증거와 증언이 나왔는지, ‘무죄’가 나올 때까지의 과정에는 관심도 없고, ‘무죄’라는 결과만 가지고 검찰과 같은 목소리를 낸다. 권력 비판, 정책 비판이라는 언론의 기본 기능조차 내던진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들은 언론이 아니다.
 

20100125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009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