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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인 세상

[정동칼럼]사실 모아 진실 덮기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나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통계를 가르쳐왔고, 통계에 대한 일부 편견에 맞서 통계를 옹호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통계의 오용과 남용을 경계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오용과 남용은 결국 통계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꼭 써야 하는 순간에도 쓰지 못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들어 두드러지는 통계 오남용은 너무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전교조와 성적’ 통계는 엉터리


  엊그제 교육과학기술부의 의뢰로 노동연구원에서 수행했다고 하는, 전교조 가입 교사 비율이 높아지면 학생들의 수능 성적이 떨어진다는 결과는 사실상 길게 논평할 가치도 없다. 통계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엉터리임을 꿰뚫었을 것이다. 여기서 전국의 학부모들을 흥분하게 할 자녀학습 비책을 알려드릴 수도 있다. 키가 크면 수학을 잘 한다.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러니 공연히 사교육에 돈 들이지 말고 아이의 성장판을 열어주는 데 집중하시라. 물론 이 ‘사실’이 엉터리임은 누구나 금방 눈치 챌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1학년보다 키도 크고 수학도 더 잘하는 것은 당연할 터인데, 그렇다고 키 때문에 수학을 잘하게 된 것은 아니다.

  이 정부 들어 계속 이어지고 있는 통계의 오남용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왜 그리도 발표기관마다 차이가 나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해 필요한 진실이 무엇인지 국민은 전혀 알 수 없다. 꼭 정부가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다. 사실들을 오용하고 남용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수많은 사실들과 통계치를 제공받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길이 없다.


  통계 전문가들 사이에는 ‘통계는 고문기술’이라는 농담이 있다. 자기가 원하는 결론이 미리 정해져 있는데, 자료 분석 결과가 그 결론과 일치하지 않으면 온갖 ‘기법’들을 동원해서 자료를 ‘고문’한다는 것이다. 연구자가 원하는 결론을 자료가 ‘실토’할 때까지 말이다.


  물론 이렇게 고문해서 만들어낸 결과는 다른 전문가가 보면 금방 들통나게 되어있지만,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선동용으로 써먹기에는 딱 좋은 기술이 아닐 수 없다. 통계라는 이름이 주는 과학성과 객관성의 이미지에 기대어서 말이다.


  현대의 국가는 통계의 기반 위에 서 있다. 성장도 분배도 복지도 사회통합도 인구 문제도 모두 통계 없이는 문제의 현황을 파악 할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통계를 잘 활용했을 때 그것은 국민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용하고도 강력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통계를 오용하고 남용하면 사람들은 공식 통계를 믿지 않게 되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부메랑이 되어 정부의 모든 정책수단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킨다. 그러니 당장 입에 달다고 해서 함부로 쓸 일이 아니다.


통계 오남용땐 정부 불신 ‘부메랑’


  한 분야를 오래 파고든 사람을 전문가라고 한다. 전문가가 할 일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사실들에 기초해서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사실들을 꿰맞춰서 교묘하게 진실을 피해가는 ‘전문성’을 발휘한다. 사실들을 모아서 진실을 덮는 것이다. 애써 배운 전문지식을 진실 가리기에 사용하는 연구자도 안타깝지만, 전문가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는 권력이 더 큰 문제다. 권력이 불편해하는 진실을 말한 전문가들이 어떻게 알게 모르게 배제되었고, 사실을 모아 진실을 덮는 데 능한 전문가들이 어떻게 선택적으로 보상받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통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국가의 존립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2010012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1201813025&code=99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