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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인 세상

[한겨레]피디저널리즘과 피디수첩 무죄

 


  기자저널리즘과 피디저널리즘은 무엇이 다른가. 보이는 것을 보도하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 보도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론의 의무가 공론을 시작하는 것이라면 가장 공론이 필요한 사안들은 관련 정보가 부족한, ‘보이지 않는’ 사안들일 것이다.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당연한 사안은 공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위험성이 있는지는 공론이 필요하다. 바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피디저널리즘은 결국에는 ‘불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문제제기’를 하는 수준의 보도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완벽하지 않다고 하여 법적으로 단죄한다는 것은 피디저널리즘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곧 가장 공론이 필요한 사안에 대한 언론의 의무를 포기하라는 것이 된다. 그래서 ‘적시된 사실의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보아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인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에는 그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허위의 사실이라 볼 수 없다’는 이번 판결은 바로 피디저널리즘에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다.

  또 피디저널리즘은 ‘보이지 않는 사안’들을 대상으로 하므로 대다수 국민들이 잘 모르는 지식을 소화해낸다. 결국 피디들은 생소한 사안에 대해 ‘전문가’ 역할을 자임할 수밖에 없고 전문가에 대한 우리나라의 왜곡된 인식과도 맹렬히 마찰한다. 아레사 빈슨의 사인이 인간광우병으로 의심된다거나 CJD(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를 vCJD(인간광우병)로 자막처리한 것들은 검찰 스스로 2008년 7월 중간수사발표에서 공개한 미국 현지 언론이나 과학자들이 사용한 표현들과 100% 일치하는 것들이었다. 똑같은 경제전망도 대학 나온 경제학자들이 하면 괜찮고 미네르바가 하면 부정확한 표현들을 샅샅이 뒤져 허위사실유포죄로 처벌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유전자가 광우병에 취약하다’거나 ‘화장품을 통해서 감염될 수 있다’거나 모두 과학자들이 한정된 실험데이터를 가지고 만든 가설들이다. 과학자들이 하면 괜찮고 기자들이 하면 형사처벌감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변종 CJD환자의 발생 가능성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다는 연구 논문이 … 발표 이후 국내 과학계에서는 …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으므로 이에 같은 취지의 보도를 한 피디수첩도 무죄라는 판시는 우리나라의 폐쇄된 전문가관을 돌파한 쾌거였다.

  더욱이, 중요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사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그 사안의 비밀성에 이해관계를 가진 권력자들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디저널리즘은 이들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때마다 그 권력과 그 추종자들을 호명할 수밖에 없다. ‘언론보도로 인하여 당해 정책에 관여한 공직자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고 하여 바로 그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판시는 이번 판결의 백미라고 볼 수 있다.

  갈 길은 멀다. 피디수첩은 지난 12월1일, 민생예산이 대폭 삭감된 반면 효용성이 검증되지 않은 4대강 사업에는 엄청난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는 방송을 하였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부 비판 일색이라며 불공정하다고 징계절차를 밟고 있다. 정운찬 총리는 전직 서울대 교수이니 아무런 근거 없이 ‘행정기관 하나라도 이전하면 나라 거덜난다’고 해도 괜찮지만 피디수첩이 불충분한 근거로 ‘4대강 때문에 민생예산이 깎였다’고 하면 징계감이 된다는 또하나의 위선의 칼날이 세워진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0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