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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인 세상

[서민의 과학과 사회]기생충을 닮은 당신께



 
   “기생충학을 해보지 않겠니?” 졸업 후 뭘 할까 고민하던 본과 4학년 때, 기생충학 교수님의 권유는 그후 내 인생을 결정지었다. 그로부터 19년째, 난 앉으나 서나 기생충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기생충의 특성에 대해 한번 말해 보겠다.


  첫번째, 기생충은 남의 것을 뺏는다. 대부분의 기생충은 작은 창자에 살면서 영양분을 섭취한다. 우리가 먹는 밥이 스스로 혹은 가족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얻은 것인 데 반해 기생충은 편안히 앉아 음식물을 받아먹는다. 자신이 열심히 벌어 얻은, 게다가 소화하기 좋게 잘 씹기까지 한 고기가 회충한테 간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생충을 퇴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건데,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남이 발로 뛰어 얻은 르포 자료를 무단 도용해 책을 낸 사람이 있다면, 심지어 그 사람이 그걸 이용해 높은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면 우리는 그를 ‘기생충 같은 자’라고 할 수 있겠다. 


  두번째, 기생충은 후안무치하다. 환자로부터 아시아조충이라는, 길이가 3m에 달하는 기생충을 꺼낸 적이 있다. 환자는 시도 때도 없이 기어 나오는 기생충 때문에 1년간 병원 네 군데를 전전하며 고생을 했단다. 그쯤 괴롭혔으면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짓는 게 생물이라면 지녀야 할 도리이리라. 경찰에 붙잡힌 범인들처럼 점퍼를 뒤집어쓰고 있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부끄러워하는 표정은 지어야 마땅할 거다. 하지만 그 기생충은 놀랍게도, 웃고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 기생충이란 놈들은 참으로 뻔뻔한 애들이구나. 만약 누군가가 표절을 해놓고서 “초고를 본 적도 없다”고 한다든지, 표절 보도에 대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적반하장 격으로 소송을 벌이기까지 한다면 우리는 그를 ‘기생충 같은 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세번째, 기생충은 약자를 괴롭힌다.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라는 기생충 때문에 해마다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는다. 수단에서는 간경화를 일으키는 주혈흡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들 그리 잘사는 나라는 아니다. 회충 몇십 마리가 몸 안에 있어도 밥 한 숟갈만 더 먹으면 별 문제가 없지만, 기생충은 대부분 밥 한 숟갈을 더 먹을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지지리 못살던 1960년대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률이 80%를 넘은 것처럼. 한마디로 기생충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적이다. 그러니 자기가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에게는 돈과 힘이 있다. 가만 안 둘 거야!”라고 한다든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에게 “다시 한 번 주둥이를 잘못 놀리면 네 혀를 잘라 놓겠다”고 협박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기생충 같은 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에이, 설마. 한두 가지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세 가지 모두를 갖춘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울 성싶다. 만에 하나, 이건 100% 가정인데,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이 기생충아!’라고 외쳐야 할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그 사람이 아주 높은 자리에 있다면, 그 사람을 아는 모든 이가 들고 일어나 그를 끌어내려야 마땅하다. 기생충은 보는 즉시 때려잡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방관만 한다면? 우리들 역시 기생충보다 하등 나을 것 없는 존재이리라.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201002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2021803275&code=990000